[더 이코노미 = 박용채 기자] 한국 상장기업들의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정책 추진이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슬롯 사이트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밸류업 정책이 주주 환원 확대 등 긍정적 효과를 일부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참여율 저조, 낮은 재무 성과, 불투명한 임원 보수 구조 등으로 인해 정책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슬롯 사이트의 자회사인 슬롯 사이트코퍼레이트는 최근 발표한 ‘밸류업 추진 현주소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한국의 밸류업은 지난 20년간 가장 진보적인 기업 정책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지만 아직까지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ROE(자기자본이익률), PBR(주가순자산비율), 배당성향 등 핵심 지표는 여전히 글로벌 주요국 대비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KRX100 지수에 포함된 대표 상장사들의 평균 배당성향은 21.3%로, 미국 S&P500(32.0%), 일본 닛케이225(33.1%)보다 10%포인트 이상 낮다. ROE 역시 한국은 7.9%에 그쳐 S&P500(15.5%)과 비교해 절반 수준이며, 닛케이225(8.4%)보다도 낮다.
슬롯 사이트는 이를 두고 “한국 기업들이 여전히 자본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자본 환원 여력도 충분히 남아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 기업의 낮은 PBR 역시 투자자들의 불신을 반영한다고 지적했다.
슬롯 사이트는 “낮은 PBR은 한국 기업의 주주 환원 정책이 아직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기업의 실적 개선이나 배당 확대보다 지배구조 투명성과 신뢰 구축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참여율 저조 역시 뚜렷한 문제로 지적됐다. 밸류업 시행 1년이 지난 현재, 코스피 상장사 중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한 기업은 128개사에 그쳤다. 이는 전체의 13.4% 수준에 불과하다. 같은 시기 일본 프라임 시장 상장사 가운데 54%가 유사한 가치 제고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과는 큰 차이다.
슬롯 사이트는 “한국은 복잡한 재벌 중심의 지배구조로 인해 정보 공개가 지연되고 투자자 소통도 제한적”이라며 구조적 문제를 꼬집었다.
특히 기업 경영진에 대한 보상 체계는 여전히 불투명하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슬롯 사이트 보고서는 “임원 보수가 장기적인 주주가치 제고와 연계돼야 하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KRX100 소속 기업 중 12개사는 적자를 기록하고도 이사 보수를 인상했고, 24개사는 흑자에도 보수를 감액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현행 보상 구조는 성과와 무관하게 설계돼 있어 주주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더불어 이사 보수에 대한 심의 및 감독 기능이 독립적으로 운영되지 않는 점도 구조적 문제로 제기됐다.
슬롯 사이트는 한국 기업들이 이제 ‘계획’을 넘어 ‘실행’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밸류업이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제도로 기업에 내재화돼야 장기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구체적 실행 방안으로 △장기 기업 전략을 반영한 이사회 구성 △성과 연계형 보상 체계 확립 △기업 정보 접근성 확대 △지배구조에 대한 정기적 검토 등을 제안했다.
슬롯 사이트는 “주주 신뢰는 공시 한두 건으로 회복되지 않는다”며 “밸류업이 단발성 이벤트가 아닌 기업 문화와 제도로 정착될 때 진정한 기업가치 제고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장기적으로 주주가치를 중시하는 기업만이 글로벌 투자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