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코노미 = 박종성 기자] 이동통신 3사가 잇따른 슬롯 무료체험 사고에 직면하면서 최고경영자(CEO) 리더십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달 정재헌 신임 대표를 전격 선임하며 CEO 교체를 단행했고, KT 김영섭 대표는 자진 사퇴 형식으로 연임을 포기했다. LG유플러스는 아직 공식적인 변화는 없지만, LG그룹의 연말 사장단 인사에서 '쇄신' 기조가 예고되며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10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지난달 30일 사장단 인사를 통해 정재헌 사장을 신임 CEO로 선임했다. 정 사장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판사로 재직했으며 SK텔레콤 법무그룹장과 대외협력 사장 등을 지낸 법조인 출신이다.
SK텔레콤이 슬롯 무료체험 사고 이후 실적 부진과 소비자 신뢰 저하에 직면한 상황에서 사법 리스크와 대외 리스크 관리 능력을 강조한 인사로 해석된다.
SK텔레콤은 지난 4월 유심(USIM) 정보 슬롯 무료체험 사고로 가입자 개인정보가 유출되며 큰 타격을 입었다. 이 여파로 3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약 90% 급감했으며, 별도기준으로는 52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정 사장은 취임 직후 열린 'SK AI 서밋'에서 "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며 AI 사업과 고객 신뢰 회복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KT는 김영섭 대표가 연임을 포기하며 스스로 물러나는 선택을 했다. 김 대표는 지난 4일 KT의 차기 대표 공개모집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그는 지난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경영 전반의 책임을 지는 CEO로서 슬롯 무료체험 사고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수차례 언급한 바 있다.
KT는 슬롯 무료체험 사고로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되고 소액결제 피해까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김 대표를 제외한 채 CEO 후보군을 새로 구성 중이다. KT는 차기 CEO에게 연간 2000억원씩 5년간 총 1조원을 정보보호 분야에 투자하는 계획을 실현할 중책을 맡길 예정이다.
김 대표의 사퇴는 사실상 정권 교체 이후 정부와의 관계 속에서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김 대표 선임 과정에서 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았고, 슬롯 무료체험 사태가 그를 둘러싼 책임론을 결정적으로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
LG유플러스는 현재로선 공식적인 CEO 교체 논의가 없는 상황이다. 홍범식 대표는 지난 3월 취임해 임기가 8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다른 통신사들과 달리 슬롯 무료체험 피해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7월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LG유플러스의 계정권한관리시스템(APPM) 서버 슬롯 무료체험 제보를 받고 관련 내용을 통보한 뒤, 회사가 약 3개월 뒤인 10월에서야 신고를 접수한 점은 논란을 낳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자체 점검 결과 침해 정황이 없다고 밝혔지만 현재 수사기관이 관련 정황을 조사하고 있어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된 상황은 아니다.
특히 LG그룹이 연말 사장단 인사에서 '쇄신'을 키워드로 제시하며 조직 변화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다. 구광모 LG 회장이 근본적인 변화를 주문한 만큼, 보안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계열사에 대한 문책성 인사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 이통3사의 리더십 변동은 단순한 인사 조치를 넘어, 슬롯 무료체험 등 보안 리스크가 통신업계 경영의 핵심 리스크로 부상했음을 보여준다. 통신사는 수천만 명의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만큼 단 한 번의 사고도 기업 신뢰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실제로 SK텔레콤과 KT는 슬롯 무료체험 사고 이후 주가 하락, 고객 이탈, 대규模 보안 투자 부담 등 경영상 타격이 상당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기술·서비스 중심의 경영 리더십이 강조됐다면, 이제는 위기관리 능력과 보안 인프라 강화 역량이 CEO의 핵심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며 "이번 인사를 계기로 통신사 전반에 경영 패러다임 변화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SK텔레콤이 정재헌 사장을 선임하며 법률·사법 리스크 관리에 무게를 둔 것은 단순 대응을 넘어 경영 방향성을 명확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KT 또한 차기 대표에게 1조원 규모의 정보보호 투자 집행이라는 과제를 부여하며, 신뢰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한편, LG유플러스는 아직 변화를 모색할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사태의 추이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범식 대표가 전략과 구조조정 전문가로서 그룹 내부 신망이 두터운 인물인 만큼 당장의 교체 가능성은 낮지만, 연말 인사 흐름에 따라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