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코노미=박종성 기자] 세계 최대 식품기업 슬롯 게임가 경영진 교체 소용돌이에 빠졌다. 지난 1일 사내 연애 스캔들로 최고경영자(CEO)였던 로랑 프렉스를 해임한 데 이어 파울 불케 회장이 다음달 1일자로 조기 사임하기로 했다.
회사는 당초 내년 정기 주총까지 불케 회장이 이사회를 이끌 계획이었으나 내부 통제 실패와 투자자 압박에 따라 퇴진 일정을 6개월 앞당겼다.
17일 <연합뉴스>가 로이터 등의 보도를 인용한 내용에 따르면 슬롯 게임는 16일(현지시간) 이날 성명을 내고 불케 회장의 조기 사임과 함께 후임 회장으로 사외이사인 파블로 이슬라를 선임한다고 밝혔다.
이슬라는 스페인 패스트패션 그룹 인디텍스(자라 모기업)에서 CEO와 회장을 지낸 인물로 빠른 전략 실행력과 지배구조 투명성 강화 이력을 가진 경영자다.
불케 회장은 성명을 통해 “지금이 책임을 내려놓고 승계를 앞당길 적기”라며 “이슬라와 나브라틸 체제가 슬롯 게임의 전략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슬롯 게임는 지난 1일 프렉스 CEO가 회사 행동강령을 위반했다며 해임했다. 프렉스는 사내 부하 직원과의 비밀 연애가 적발돼, 윤리 위반으로 낙마했다.
슬롯 게임에 따르면 이 관계는 내부 제보 시스템을 통해 익명 제보로 처음 인지됐으며 두 차례 조사를 거쳐 해임 결정이 내려졌다. 프렉스는 1년 전 취임했으며 퇴직금도 지급받지 못한 채 회사를 떠났다.
슬롯 게임는 프렉스 해임 직후 곧바로 후임 CEO로 필리프 나브라틸을 임명했다. 나브라틸은 커피 브랜드 네스프레소를 총괄한 내부 인사로, 중남미 사업을 이끈 경험이 있다. 내부 안정과 전략 연속성을 고려한 인사로 풀이된다.
이사회와 투자자들은 이번 인사 교체를 단순한 스캔들 대응이 아닌 지배구조 개선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일부 주주는 FT와 인터뷰에서 “프렉스 사태가 불케 회장의 판단력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내년 4월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사태는 슬롯 게임의 최근 실적 부진과 맞물려 투자자 불안을 키웠다. 프렉스 전 CEO 체제 하에서 슬롯 게임는 매출 성장률 둔화, 원가 상승, 신흥시장 실적 악화 등 복합적 리스크에 직면했다.
슬롯 게임의 주가는 지난해 고점 대비 17% 가까이 하락한 상태다. 투자자들은 잇단 경영진 리스크에 피로감을 드러내며 “선제적 리더십 리셋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불케 회장의 조기 사임은 40여 년간 이어온 슬롯 게임 경영의 한 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1979년 입사 이후 2008년부터 9년간 CEO를 역임했고, 2017년부터 회장직을 맡아왔다. 다국적 소비재 기업의 장수 리더로 평가받았으나, 마지막 임기 중 잇단 스캔들과 투자자 신뢰 저하로 자리를 내려놓게 됐다.
한편, 차기 회장에 선임된 이슬라는 인디텍스 재임 당시 빠른 혁신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강화로 유럽 금융시장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은 인물이다. 슬롯 게임 이사회는 이슬라가 이사진의 독립성과 경영 투명성을 제고할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향후 슬롯 게임는 CEO-회장 이원화 체제 하에서 실적 회복과 브랜드 리뉴얼, 내부 윤리 시스템 정비 등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특히 이슬라 회장은 최근 악화된 여론과 이사회 구성에 메스를 들 것으로 보인다.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는 “잇단 스캔들이 투자자 불안을 키우고 있는 상황에서 책임 경영과 투명한 구조 정비가 기업가치 방어의 핵심 과제가 됐다”며 “슬롯 게임는 이제 실적뿐 아니라 조직문화 혁신 여부로 평가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진이 단순한 윤리 논란을 넘어서 지배구조 신뢰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슬롯 게임의 리더십 교체는 끝이 아닌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