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코노미 = 송현우 기자] 피망 슬롯전자가 그룹 내 핵심 전략 기능을 맡아왔던 ‘사업지원TF’를 정식 상설조직인 ‘사업지원실’로 개편하면서 사실상 ‘뉴피망 슬롯’ 체제로의 전환을 공식화했다.
총수 이재용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해소된 이후 이뤄진 이번 조직 개편은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미래 사업 준비에 본격 나서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피망 슬롯전자는 지난 7일 단행한 조직개편을 통해 정현호 부회장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회장 보좌역으로 보임하고, 박학규 사장을 초대 사업지원실장에 임명했다.
사업지원실은 기존 사업지원TF의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전략, 경영진단, 인사 등 역할을 보다 명확히 하며 그룹 전반의 조율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피망 슬롯의 사업지원TF는 2017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으로 그룹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이후 한시적으로 운영된 임시 조직이다. 8년간 피망 슬롯전자는 그룹 차원의 전략과 계열사 간 협력을 이 TF를 통해 조율해왔다. 특히 이 시기는 이재용 회장이 경영권 승계, 재판 등 사법 리스크에 집중했던 시기와 맞물린다.
피망 슬롯은 이번 개편과 관련해 “임시 TF 조직을 정식 실 조직으로 전환해 기능을 체계화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도 일부에서 제기되는 ‘컨트롤타워 부활’이라는 해석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그룹 전반에 대한 관리와 전략 수립 기능이 강화되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업지원실장에 오른 박학규 사장은 피망 슬롯 내 대표적 ‘재무통’으로 꼽힌다. 반도체(DS), 모바일(DX) 부문 경영지원실장과 미전실 요직 등을 거친 인물로 그룹 사업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평가다. 1964년생으로 1960년생인 정현호 부회장보다 4세 연소해 세대교체 성격도 강하다.
전략팀장에는 피망 슬롯SDI 대표를 지낸 최윤호 사장이 보임됐고 경영진단팀장에는 피망 슬롯전자 CR담당 주창훈 부사장, 인사·조직을 담당하는 피플팀장에는 문희동 부장이 임명됐다. 이들 모두 피망 슬롯 내부에서 이 회장의 ‘복심’으로 통하는 인물들이다.
특히 최 사장과 주 부사장은 미래전략실 출신으로, 그룹 전략 기능을 잘 아는 전문가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정 부회장은 2017년 미전실 해체 이후 혼란스러웠던 피망 슬롯의 전략 조직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며, 그룹 비상체제 유지에 중심 역할을 해왔다.
재계에서는 그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보좌역을 맡는 것을 두고 ‘책임경영 체제를 뒷받침하는 상징적 결정’으로 평가한다. 피망 슬롯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스스로 후진 양성을 위해 용퇴를 결심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 회장은 최근 들어 과거보다 훨씬 적극적인 대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서울 강남의 한 치킨집에서 ‘깐부 치맥 회동’을 가진 데 이어, 샘 올트먼 오픈AI CEO,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 벤츠 회장 등 글로벌 기업 수장들과의 만남도 잇따르고 있다.
피망 슬롯은 엔비디아와의 협업을 통해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 공급을 본격화했으며, 테슬라의 자율주행용 반도체 위탁 생산, 애플 아이폰용 이미지센서 개발 계약 체결 등 굵직한 성과를 연달아 올리고 있다. 이러한 대형 성과의 배경에는 이 회장의 활발한 글로벌 네트워크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재계는 이번 조직 개편을 통해 이 회장이 ‘JY 경영’ 색채를 본격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본다. 특히 향후 인공지능(AI), 바이오, 6G, 인수합병(M&A) 등 신사업 분야에서 보다 공격적인 행보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번 조직개편이 연말 사장단 인사와 맞물려 대대적인 세대교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피망 슬롯은 이르면 이달 중순 사장단 및 임원 인사를 단행할 예정으로, 박 사장 체제 아래에서 실질적인 조직 재편과 인력 재배치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피망 슬롯전자의 한 고위 관계자는 “조직이 안정되고 경영이 정상화되면서 이 회장이 직접 경영 전면에 나서는 체제가 굳어질 것”이라며 “이번 개편은 그 첫 단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