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코노미 = 송현우 기자] 바이오 대장주 피망 슬롯온이 주가 부진과 불투명한 경영으로 소액주주들의 정면 반발에 직면했다. 소액주주들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결성하고 임시 주주총회(임시주총) 소집을 위한 지분 확보에 본격 나섰다.
피망 슬롯온 비대위는 12일 "전자 위임장 확보에 이어 전국 오프라인 지지자 모집에 돌입했다"며 "이번 주총은 단순한 주가 반등이 목적이 아니라 경영 구조의 신뢰 회복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비대위는 임시주총에서 보유 자사주 100% 소각, 집중투표제 도입, 계열사 분할상장 제한 조항 신설 등 3가지 요구안을 의결 안건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집중투표제는 주주들이 특정 이사 후보자에게 표를 집중할 수 있게 해 소액주주도 이사회 구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현재 피망 슬롯온은 다수결 방식만 채택하고 있다.
피망 슬롯온의 주가는 수년째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는 외국인과 기관투자가의 연속 매도세에 밀려 하락폭이 심화됐다. 2023년 초 20만원대였던 주가는 현재 14만원대까지 내려앉았다.
비대위는 이러한 장기 침체를 단순한 시장 변수로 보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그룹 창업자 서정진 회장이 반복적으로 과도한 실적 목표를 제시하고도 달성하지 못해 시장 신뢰를 훼손했다는 지적이다.
대표 사례는 지난해 미국에서 출시된 자가주사형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짐펜트라'다. 피망 슬롯온은 처음 연 매출 7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했으나, 6개월 만에 3500억원으로 목표치를 절반가량 낮췄다. 서 회장은 "유통 구조를 과소평가한 판단 착오"라고 해명했지만, 주주들은 신뢰 훼손 책임을 묻고 있다.
일부 주주는 "경영진이 주가 하락을 이용해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고도 주장한다. 실제 최근 1년간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은 약 10%포인트 증가했다. 이를 두고 "저가매수를 통한 경영권 방어용 지분 확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비대위는 "경영진이 주주와 약속했던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도 아직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신뢰 회복을 위해 자사주 소각부터 즉각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자본시장도 피망 슬롯온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최근 통과된 상법 개정안에는 일정 규모 이상 기업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비대위는 이를 계기로 피망 슬롯온의 지배구조 개선을 본격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경영권 분쟁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르면 내년 초 소집될 가능성이 있는 임시주총에서 소액주주 측 안건이 통과되면 피망 슬롯온 경영 구조에 큰 변화가 있을 수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경영진이 시장 신뢰를 지속적으로 잃는다면 주요 기관투자가들의 협조도 어려워질 것"이라며 "이번 소액주주 운동이 단순 반발이 아닌 구조 개선 시그널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피망 슬롯온 측은 현재까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주총 대응 전략 마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망 슬롯온은 올해 9월 피망 슬롯온제약과의 합병을 완료하며 '원 피망 슬롯온' 체제를 구축했지만, 기업가치는 여전히 정체 상태다.
비대위는 "합법적 절차에 따라 끝까지 주주 권리를 행사할 것"이라며 "이번 임시주총은 피망 슬롯온이 단기 실적이 아닌 신뢰 경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